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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과 작품세계

회고와 평론

회고
김수영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무모한 시인이라 불리었고 안일을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자못 전투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소심한 사람들로부터는 심지어 위험하다고까지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는 자기의 소신대로 오늘의 한국시에 문제를 던지고 그것들의 해결을 위하여
가장 과감한 시적 행동을 보여주던 투명하고 정직한 시인이었다.
시인 김현승
그러나 우리는 기려 기억할 것입니다.
한 시대를 바르고 진실하게, 순정하고 양심의 지시대로 살아보려던 김형의 예리한 지성, 성실한 행동력,
참다운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그 찬연한 업적을 우리들의 우정과 우리의 문학사는 길이 기억하고 전승할 것입니다.
시인 박두진
그가 어느 날 대폿집에서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신형, 사실 말이지 문학하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무슨 무슨 주의의 노예가 될 순 없는 게 아니겠소?”
그러나 그의 커다란, 사슴보다도 천 배, 만 배 순하디 순한 눈동자를 기계문명의 부속품들은 궁지로 몰아넣으려했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그러나 시인 김수영은 죽지 않았다.
위대한 민족시인의 영광이 그의 무덤 위에 빛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민족의 알갱이들은 다 알고 있다.
시인 신동엽
이윽고 양주동 선생의 소개를 받고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시인이 걸어 나왔다.
검은 싱글에 후리후리한 키의 그는 약간 신경질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듯이 보이는 피부에 검고 깊던 두 눈,
시를 낭독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그가 내게 준 인상은 깊었다.
그가 바로 김수영이었던 것이다.
시인 김 철
평론
김수영의 시는 우리 시의 가장 벅찬 젊음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탐구적이고 가장 준열하고 우상 파괴적이며 가장 유연한 시적 양심이었다.
김수영은 탕진됨을 모르는 가능성이자 안타까운 미완성이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그럴듯한 언사를 농함으로써 시 자체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심지어 시를 죽이기까지 하는 작태는
오늘날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극성스럽다.
혹은 ‘민중시’ 혹은 ‘순수시’에 관한 논의들뿐 아니라 이런저런 이름이 붙는 작품들 자체에도
그러한 혐의를 걸게 되는 일이 흔하다. 김수영의 살아있음을 올바로 증언하는 산 자의 책무가 막중해진다.
그것은 김수영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자신의 삶을 삶답게 만들려는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김수영의 생애는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또 그것을 통하여 우리 시대에 있어서의 예술가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는 예술가의 양심을 넘어서 인간의 양심을, 예술가의 자유를 넘어서 인간의 자유를 이야기하였다.
그의 자유로운 언어는 사실이나 감정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의 언어이고
자신의 모든 상황에 대한 완전한 의식을 포착하려는 데서 나온다.
그는 시에 있어서 무엇보다 거짓을 미워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워했던 것은 감정이나 태도의 거짓 꾸밈이었다.
그에게는 일체의 정립된 언어, 고정된 언어는 부정직한 것이었다.
그의 행동으로서의 시의 언어의 이상은 완전히 정직한 언어에 이르고자 하는 그의 예술가적 양심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자유로운 언어는 사실이나 감정에 있어서 완전히 정직한 언어이고 그러한 언어는 비판적 언어였다.
이 비판은 자기비판을 포함하여 언어 행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허위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언어는 언어행위 한가운데에 스스로의 행위를 살피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 밀착되어 있으며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앞지르는 언어가 된다. 비판적 각성이 언어의 자기몰입과 속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김수영은 우리 시에 용기를 주었다.
그는 시에 시적으로 된 말을 모은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시적 힘을 지니도록 시를 썼다.
이 점에서 그는 자유시의 이상을 실천했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반적인 말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에게 시는 소란한 현실 위에 걸리게 될 예쁘고 평화로운 액자도 아니었고,
삶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망명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을 현실로 발견하는 일이자 그것을 정신화 하는 일이었고, 현실의 확장이자 그 전복이었다.
시적 감수성과 심미감의 폭이 넓어지면 아무리 난폭하거나 실망스러운 현실도, 아무리 조야하고 생경한 언어도,
그것이 인간의 마음과 깊고 감동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시가 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김수영의 시에 있어서 중심적인 주제는 사랑이다.
‘인간 상실로부터의 인간 회복이 시인의 임무’임을 말했을 때,
요컨대 그는 인간을 가난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노력 속에서 시작의 본질을 보았고,
그런 한에서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의 죽음에서의 의식으로부터 우러나온 중대한 결론이 사랑이며
이 사랑이야말로 현실에 대한 그의 관심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했다.
문학평론가 김종철
김수영은 해방 후 한국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시인이다.
그에게 시는 일상에서 벗어난 고상한 예술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는 양심의 산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문학과 사회 현실을 일치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사소한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정치 현실까지 다양한 소재가 그의 시에서 새로운 표현을 얻었다.
그가 사용한 어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어였고 특유의 반복기법으로 독자적인 리듬을 만들어내었다.
난해하면서도 새롭고, 엉뚱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를 구사한 그의 시는 1960년대 이후 후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한국인이 처한 서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껴안은 김수영의 시는 자유와 사랑의 세계를 꿈꾸었다.
그는 자유가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였다. 그가 추구한 자유는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으로서의 자유였다.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으려는 양심과 세상을 바로 보려는 그의 정직은
비속한 현실을 그리기 위해 비속어를 사용했고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직설적인 문장을 사용했다.
그의 시 쓰기는 사랑의 작업이었고 자신의 시가 세계사의 전진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내가 움직일 때, 세계는 같이 움직인다. 이것이 김수영이 희망한 시의 영광이자 기쁨이었다.
문학평론가 이영준